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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cographies

NAVER ON STAGE NO.336 Park Jiha (2017)

Release Date: May 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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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VER ON STAGE No.336

꿈을 꾸는 것만 같다. 박지하의 음악이 울려 퍼지면 그때부터는 속수무책이다. 현실은 천천히 지워진다. 눈앞에 엄연히 존재하는 사물들, 여느 때처럼 흘러가는 시간들도 모두 흐릿해지다가 결국 사라진다. 보고 있어도 보이지 않고, 눈을 뜨고 있어도 눈을 감은 것만 같다. 보이지 않으니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대신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것들이 천천히 드러난다. 애써 보지 않으려 했던, 깊이 묻어두었던 기억들. 여전히 그립고 아프고 때로는 서러운 일들. 그 일들이 머물렀던 시간과 공간과 사람과 공기까지 어제처럼 생생해진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다고 스스로 속이고 위로했던 마음들이 채 마르지 않은 눈물 자국으로 고개를 든다. 사실은 괜찮지 않다고, 아픈 것은 여전히 아프고 그리운 것들은 여전히 그립다 한다. 다만 견딜 뿐이라 한다. 그렇게 살아갈 뿐이라 한다. 어쩔 수 없다 한다. 그렇게 박지하는 슬픔의 원형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삶은 그립고 서럽고 슬픈 날들을 강물처럼 노 저어 가는 짧은 여행이라 말한다. 모두 출렁이며 흔들리며 가고 있다고, 끝내 우리는 만날 것이라고.

세상에는 박지하를 아는 이보다 모르는 이들이 더 많을 것이다. 박지하의 음악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크로스오버 듀오 숨[suːm]의 리더이자 프로듀서로 가야금 연주자 서정민과 함께 활동하면서 해외 무대에서 각광을 받는다는 사실. 그리고 2016년에 발표한 솔로 음반 [Communion]으로 [2017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재즈&크로스오버 크로스오버 음반 분야에 노미네이트되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하는 이들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하지만 예술이 원래 그런 거라고, 세상이 원래 그렇다고 말하기는 얼마나 쉬운가. 사람들이 예술의 가치를 모른다고, 진실한 음악은 외면당하고 가벼운 음악만 주목받는다고 말하기는 얼마나 편리한가. 숨어있는 음악을 알아보며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도 얼마나 유용한가. 그럼에도 박지하의 음악은 음악 밖의 일에 대해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예술가로 산다는 일이 더 이상 영예롭지 않은 시대에 그는 계속 곡을 쓰고, 피리를 불고, 생황과 양금을 연주할 따름이다. 박지하의 음악은 익숙한 악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의 음악에는 피리와 생황과 양금이 비브라폰과 색소폰과 베이스 클라리넷과 어울리고 여기에 퍼커션이 붙을 뿐이다. 노래는 거의 없고 끊어질 것 같은 연주가 이어질 따름이다. 경쾌하지도 않고 신나지도 않는 음악.

그러나 그 음악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들조차 꼼짝할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 힘은 한국 전통음악의 장단과 선율로부터 나와 한국인의 삶으로 이어지기 때문이 아니다. 박지하는 한국 전통 악기인 피리와 생황으로 연주하지만 한국 전통음악의 장단과 구조에 개의치 않는다. 한국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 없는 악기로 박지하는 누구든 빨려들고 무장해제 될 수밖에 없는 멜로디와 사운드를 뿜어낸다. 아련하고 애틋한 멜로디가 생황과 피리를 통해 연주될 때, 그리고 비브라폰과 색소폰과 베이스 클라리넷과 퍼커션이 조심조심 그 뒤를 따를 때, 그 은밀하고 은근한 세계는 어느 가슴에게든 스며들 수밖에 없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생황의 멜로디, 두드리지 않는 듯 두드리는 비브라폰의 영롱한 울림은 익숙한 음악 장르와 형식과 구조를 뛰어넘는다. 안개처럼 깔리는 색소폰과 클라리넷 연주 역시 마찬가지이다. 생경하고 낯설 수 있지만 그 연주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어울릴 때 박지하의 음악은 돌연 통속적이고 선명하게 완성된다. 멜로디는 노래를 대신하고, 숨죽인 연주의 공간과 여백은 마음이 번지고 흘러가는 풍경을 닮아 편안하고 자연스러우며 모호하다. 음악 속 선명한 멜로디와 모호한 사운드의 극적인 대비는 친숙함과 자유로움을 횡단하며 감정 이입하게 하다가 결국 무한의 세계로 발을 헛디딘 듯 넋을 잃게 한다. 그래서 이처럼 아름답고 유영하는 음악으로 말을 걸면 마음은 그에 답하게 된다는 사실. 우리는 그렇게 두드리면 일렁이고, 일렁이며 물결치는 가슴으로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박지하의 음악은 드러낸다. 세상에는 해일 같은 파도로 덮쳐오는 음악만 있는 것이 아니다. 크고 선명하고 눈부신 음악에만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작고 여린 사람들이다. 우리는 비어있고, 끝내 다 알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새 봄꽃이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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